
디스크립션 영화 《아수라》는 선과 악의 경계를 지워버린 세계를 배경으로, 권력과 욕망에 잠식된 인물들이 끝없이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누아르 영화다.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도, 명확한 정의의 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남기 위해 악을 선택하고, 더 큰 악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서로를 물어뜯는다. 부패한 정치권력, 폭력적인 자본, 타협으로 얼룩진 공권력은 서로 얽혀 하나의 거대한 지옥도를 형성한다. 《아수라》는 관객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않지만, 그 대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극단적으로 응축해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어둡다”는 평가와 함께 강한 인상을 남겼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형 누아르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수라》의 줄거리, 인물 구도, 연출 미학, 그리고 ‘정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서론: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 없는 세계
《아수라》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은 영화다. 시작부터 영화는 타락한 세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이 영화의 세계에는 깨끗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선의는 곧 약점이 된다. 서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작품이 ‘정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는 이미 부재하며, 이야기는 그 폐허 위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형사 한도경은 전형적인 안티히어로다. 그는 부패한 시장을 비호하며 범죄에 가담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타협한다. 그의 선택은 이해될 수는 있지만, 결코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 모순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관객은 도경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를 응원할 수 없게 된다. 《아수라》의 세계관은 제목 그대로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는 끝없는 싸움과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 상태에 놓여 있으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론에서는 이러한 세계관이 왜 관객에게 극심한 피로감과 동시에 강한 몰입을 유발하는지를 살펴본다.
본론: 줄거리, 인물들의 선택, 악이 증식하는 구조
《아수라》의 줄거리는 형사 한도경이 부패한 시장 박성배와 검찰, 정치 권력 사이에서 이용당하며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도경은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악에 손을 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택은 생존 전략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본론에서 핵심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악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성배 시장은 노골적인 폭력과 탐욕의 상징이며, 검찰은 정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권력의 또 다른 손이다. 언론과 조직폭력배 역시 이 구조 안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악인을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성배는 과장된 악역처럼 보이지만, 그의 폭력성은 시스템이 허용한 결과다. 도경 역시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더 쉬운 악을 택한다. 영화는 이 선택의 연쇄를 통해, 개인의 도덕성이 얼마나 쉽게 구조에 잠식되는지를 보여준다. 연출적으로 《아수라》는 과도할 정도로 밀도 높은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피로 얼룩진 공간, 어두운 색감, 숨 쉴 틈 없는 폭력은 관객을 압박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인물들이 빠져 있는 세계의 감각을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국내 개봉 당시에는 이 과잉된 어둠이 호불호를 갈랐지만, 시간이 지나며 “타협하지 않은 누아르”라는 평가가 늘어났다.
결론: 정의가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질문
《아수라》는 정의의 승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매우 냉혹하다. 모두가 악인이 된 세계에서, 과연 정의는 가능한가. 영화의 답은 분명하다. 이 구조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론이 곧 허무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수라》는 정의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권력과 생존, 욕망이 결합된 구조 속에서 개인의 윤리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관객을 안전한 위치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경을 비난하면서도, 그의 선택을 완전히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가족, 생존, 현실이라는 이유는 언제든 타협의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수라》는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경고에 가깝다. 정의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구조가 썩으면 개인 역시 썩어간다는 사실.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큰 가치는,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아수라》는 보기 힘든 영화이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느와르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