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크립션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동네에서 민원왕으로 불리는 까칠한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겠다고 나서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점차 관객을 전혀 다른 감정의 지점으로 이끈다.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 했던 진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도, 외국 여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세계 앞에서 직접 증언하기 위함이었다. 이 영화는 무거운 역사를 눈물로만 강요하지 않고, 일상의 유머와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천천히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국내에서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는 영화로 평가받았고, 해외에서도 개인의 목소리로 역사를 증언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이 글에서는 《아이 캔 스피크》의 줄거리, 인물 관계, 연출 방식, 역사적 메시지, 그리고 국내외 평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서론: 웃음으로 시작해 침묵의 역사를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초반부는 매우 가볍다. 영화는 동네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민원왕 할머니 나옥분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민원을 넣고, 규정과 원칙을 따지며 공무원들을 진땀 나게 만드는 그녀는 전형적인 코미디 캐릭터처럼 보인다. 이 시점에서 관객은 이 영화가 세대 차이를 다룬 휴먼 코미디일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서론에서 중요한 점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이 기대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옥분은 영어 공부를 시작하며 젊은 공무원 민재와 티격태격 관계를 형성하고, 두 사람의 어색한 교류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영어 단어를 외우며 실수하는 장면, 발음을 틀리는 순간들,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는 관객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낮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웃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어 공부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며, 관객은 점점 다른 감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옥분이 유난히 영어 문장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외우는 이유, 특정 표현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녀가 ‘말해야 할 문장’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론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아이 캔 스피크》가 왜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사람의 이야기’로 읽혀야 하는지, 그리고 영화가 관객의 감정을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짚는다.
본론: 줄거리, 인물 관계,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의미
《아이 캔 스피크》의 줄거리는 나옥분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민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처음에 민재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그녀를 대하지만, 점차 옥분의 진지함과 성실함을 보며 마음을 연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며, 세대와 성격을 넘어선 관계를 형성한다. 본론에서 핵심은 ‘영어’라는 언어의 의미다.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다. 옥분에게 영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계에 직접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영어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장 많은 사람이 듣고, 왜곡 없이 이해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옥분은 위안부 피해자로서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받아 왔다. 사회적 시선, 개인적 수치심, 그리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은 그녀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옥분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가장 어렵고 고된 방법을 선택한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외국의 청문회에 서겠다는 결심은 그 자체로 강한 주체적 선택이다. 민재 역시 변화한다. 그는 옥분의 과거를 알게 되며, 자신의 역할이 단순한 영어 과외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젊은 세대인 민재가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이 영화가 세대 간 연대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연출 면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적 비극을 과도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표정, 말의 망설임, 침묵의 길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이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압도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국내 평단은 이러한 절제된 접근을 높이 평가했고, 해외에서도 개인의 증언이 가진 힘에 주목했다.
결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역사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를 ‘기억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우리는 과연 그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위안부라는 무거운 주제를 개인의 삶과 선택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나옥분은 상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후반부, 옥분이 영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장면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선다. 그것은 승리도, 복수도 아닌 ‘존엄의 회복’에 가깝다. 말할 수 없었던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또한 이 영화는 젊은 세대의 역할을 함께 묻는다. 민재는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남는다. 이는 기억의 전달이 강요가 아니라 연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상징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웃음으로 문을 열고, 진실로 관객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용히 말한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 문장은 개인의 선언이자,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역사적 증언이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그 문장이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