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가수의 노래처럼 무더운 여름 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냉면은 당연히 여름에 먹는 대표 음식이자 국민음식이다. 그런데 부산은 이야기가 다른다. 부산에서는 냉면집 찿아보기가 정말 힘들다. 왜냐면 부산을 대표하느 밀면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밀면은 단순히 여름에 먹는 시원한 차가운 면 요리이상의 가치가 있다.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번에는 밀면의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배경부터 냉면과 차이점,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왜 밀면이 특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향토음식으로써 부산 밀면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밀면 하면 부산이라는 공식이 있다. 마치 우리 어렸을때 불렀던 노래가사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빨가면 사과" 처럼 자동으로 부산 = 밀면이라는 공식이 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찿아보기 어려운 이 요리는,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여겨질 만큼 널리 알려졌다. 당연히 더운 여름에 소비가 늘어나는 음식이지만, 단순한 계절 음식이라고 단정 짖기에는 부족하다. 왜냐면 밀면은 이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 속에 깊게 자리 매김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또 다른 공식인 부산은 항구라는 말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여러지역 여러나라의 문화가 자연스레 섞이는 곳이었다. 특히 민족의 아픔인 동족산잔의 6.25 전쟁 이후 피난민이 모이면서 밀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피난민중 이북의 대표적인 냉면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메밀을 구할 수 없어 꿩대신 닭이란 말처럼 급한데로 밀가루로 만든 면을 사용해 비슷한 음식을 만들었고, 여기에 부산의 입맛과 재료가 더해져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날 부산 시내를 걷다 보면, 편의점 수 만큼이나 밀면집이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정말 부산 아무데나 있다. 전통시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서면과 같은 젊은이 들이 모이는곳 도심의 빌딩숲속에도 정말 사람이 먹고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다.최근에는 젊은 감성을 입힌 밀면 전문점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고 점차로 프랜차이즈화 되고 있다. 따라서 밀면은 그저 ‘먹는 음식’을 넘어 부산 사람들의 정체성이며\지역색을 담고 있는 향토음식이라 부르지 않을수 없게 되어 버렸다.
냉면과 차이 - 같은 듯 다른, 미묘한 경계
밀면이 시작은 냉면에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둘은 분명이 다르다. 재료, 조리 방식, 맛까지 차이나고 구분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먼저 면에 쓰이는 원재료가 다르다. 냉면은 메밀과 전분(감자, 고구마)을 주로 쓰는 반면, 밀면은 말 그대로 밀가루를 사용한다. 전쟁 이후 원재료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미국에서 원조해주던 밀가루를 활용하게 되면서 밀면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고 본다. 사실 6.25 전쟁으로 국토가 박살이 나버려 메밀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곡물들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부산엔 메밀이 자라지 않는다.면발의 식감 역시 많은 차이가 있다. 냉면이 쫄깃하면서도 질겨서 가위로 잘라먹어야 할 정도 이지만, 밀면은 좀 더 부드럽고 탱글한 느낌이 강하다. 누구든 쉽게 씹을 수 있는 식감 덕분에 연령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육수와 양념의 차이가 있는데. 냉면의 육수가 맑고 깔끔한 슴슴한 맛이라면, 밀면은 진한 고기 육수에 양념장을 섞어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양념장 또한 칼칼하기보다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처음 먹었을 때는 그 슴슴한 냉면보다 좀 더 친숙한 맛이 많이 듣는다. 이처럼 재료나 맛, 조리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진 밀면은 냉면에서 시작된 음식이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성과 특유의 입맛이 결합되면서 독립적인 음식으로 진화하였고 한식에 있어 새로운 면의 한장르가 되었다.
탄생 배경 - 피난민의 기억에서 시작된 음식
밀면의 시작은 불행히도 6.25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피난처를 찾아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그중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았다. 당연히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없었던 그들은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했고, 그저 할수 있는거라곤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아픔을 달래야 했었다. 이북의 대표적인 음식은 바로 냉명이다. 그렇게 그들이 냉면을 만들어 먹거자 하였으나 냉면에 쓰이는 메밀이나 전분을 구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밀가루로 면을 뽑고(왜냐면 미군 원조를 통해 밀가루 구하기는 비교적 용이하였다), 부족한 고기를 끓여 육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밀면의 시초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초기엔 단순히 허기짐을 채우기 위한 음식이었고 실향의 아픔을 위로받던 음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진화하고 발전한다. 육수를 더 진하게 만들고, 면발에 탄력을 주기 위해 전분을 추가하기도 했다. 여름철 부산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시장과 골목을 중심으로 밀면 전문점이 하나둘 생겨났다. 냉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성비 좋아 남녀노소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볼때 19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밀면은 이제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부산의 기후와 지역의 입맛, 밀가루를 사용할 수 밖에 없어던 재료구입의 한계성,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합쳐저 지금의 ‘부산 밀면’이 완성된 것이다. 밀면은 단순히 음식이라기보다는, 한반도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부산의 문화유산이요 대한민국 음식문화 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부산 밀면은 단순히 시원하고 맛있는 면 요리를 넘어, 부산 사람들의 정체성과 추억, 그리고 도시의 역사를 품은 음식이다. 냉면과는 확실히 다른 맛과 구조를 지닌 이 음식은, 분명 차가운 면이라는, 차갑게 먹는음식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지만,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자라난 대표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다. 여타의 향토음식에 비해 그 역사는 최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부산을 방문한다면, 꼭 한번 먹어보길 바란다. 다른데 말고 부산에서 특히나 그 아련했던 향수와 추억을 느끼고 싶다면 깔끔하게 정리된 프렌차이즈 말고 조금은 허름한 노포에서 드시길 추천한다. 그 속에서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